일터
이케아의 일터는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하나의 긴 여정입니다. 매장을 꾸미는 일에서 시작해, 상품이 들어와 자리를 잡고, 진열대에 올라 상담을 거쳐 손님에게 가고, 창고에서 손님 대신 집품해 배송 차에 실립니다. 더러는 교환으로 다시 돌아오기도 합니다. 그사이 식당과 비스트로와 카페에서는 손님과 코워커의 끼니를 차립니다. 그 모든 걸음마다 사람의 손이 있습니다. 눈에 띄는 곳에서 손님을 맞는 손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것을 떠받치는 손도 모두 이케아의 코워커, 우리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랫동안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일을 하는 사람으로만 남아 있었습니다. 부서와 업무가 다르고, 매장이 다르고, 계약의 형태가 다른 만큼 서로의 사정을 알 기회는 드물었습니다. 일의 조건이 정해지는 자리까지 우리의 목소리가 닿는 길은 좁았고, 그 좁은 길마저 혼자서는 걷기 어려웠습니다. 일터는 우리가 매일 채우는 곳이었지만, 함께 만들어 온 곳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한 사람이 두 번째 터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시작한 사람은 고양점 풀필먼트팀에서 일하는 코워커 박준석입니다. 대단한 결심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제가 일하는 팀의 근로조건과 일하는 환경이 나빠지는 것을 더는 두고 볼 수 없어서, 그 하나를 되돌려 보려고 했을 뿐입니다.
그러다 알게 되었습니다. 근로조건과 일하는 환경이 나빠지는 쪽으로 바뀌는 데에는 누구의 동의도 필요하지 않았고, 되돌리는 데에는 쓸 수 있는 길이 거의 없었습니다. 저는 고양점의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이기도 합니다. 그 자리에 앉아서도 닿지 않는 곳이 너무 많았습니다.
지금 여기 이름이 하나뿐인 것은 시작이 그랬기 때문이고, 함께 세우는 사람이 늘면 여기 남을 이름도 늘어납니다.
잇터
잇터는 일터 옆에 나란히 서 있지만 전혀 다른 터입니다. 일터가 우리에게 주어진 곳이라면, 잇터는 우리가 스스로 잇고 세워 가는 곳입니다.
이 이름은 ‘잇다’에서 왔습니다. 목소리를 잇고, 부서와 부서를, 매장과 매장을 잇고, 오늘의 노동과 내일의 권리를 잇는다는 뜻입니다. 함께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점이 아니라 선이 되고, 선이 다시 면이 됩니다. 그 과정이 잇터가 그리는 그림입니다.
잇는다는 것은 단지 연결된다는 뜻만은 아닙니다. 이어지지 못한 목소리는 분명히 있어도 없는 것으로 여겨지기 쉽고, 이어진 목소리는 비로소 그 자리에 있는 것이 됩니다. 우리를 ‘잇는’ 일과 우리가 ‘있는’ 일은 그래서 하나입니다.
‘터’는 ‘자리’를 뜻하는 우리말이지만, 소리 내어 읽으면 ‘~하는 사람’을 뜻하는 영어 접미사 ‘-ter’와 닮았습니다. 그래서 잇터(itter)는 ‘잇는 자리’이면서 동시에 ‘잇는 사람’입니다. 이 페이지를 읽고 있는 당신도, 이미 잇터입니다.
비전
이케아의 비전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To create a better everyday life for the many people.
많은 사람들을 위한 더 좋은 생활을 만듭니다.
우리는 이 문장에 동의합니다. 그래서 묻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 안에, 매장에서 일하는 우리 코워커도 들어 있습니까? 잇터는 이케아가 세상에 내놓은 그 약속이 매일의 일터에서도 지켜지도록 하겠습니다.
상향 평준화
이케아의 노동조건이 더 열악한 일터들에 비해 나은 편이라는 것을 우리는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이런 말이 배부른 소리로 들릴 수 있음도 압니다. 더 아래에는 더 큰 관심이 필요한 일터들이 있고, 그 개선이 먼저라는 말도 틀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향 평준화를 막기 위해 아래를 끌어올리는 일이 중요한 만큼, 상향 평준화를 위해 위를 밀어 올리는 일도 중요합니다. 더 열악한 일터가 이케아의 알리바이가 되지 않게 하는 일과, 이케아가 그 일터들의 모범이 되게 하는 일은 방향이 다를 뿐 같은 싸움입니다.
사소함의
무게
톨스토이를 빌리면, 행복한 회사는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회사는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합니다. 그 이유는 크지 않아도 됩니다. 사소한 결핍 하나, 사소한 부당함 하나가 회사 생활을 불행 쪽으로 기울게 합니다. 그러니 ‘저마다의 이유’는 아무리 사소해 보여도 이미 사소하지 않습니다. ‘내가 예민한 건가’ 하고 넘어간 일들이 쌓여서 일터의 모양을 정합니다. 그래서 사소한 일부터 들려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놀잇터
일터가 있고, 잇터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곳이 가끔 놀잇터이기도 하면 좋겠습니다.
싸우기만 하는 자리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잇터는 문제를 함께 짊어지는 곳이면서, 동시에 잠깐 숨을 돌리고 웃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려 합니다. 서로의 이름을 부르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고, 가끔은 그냥 놀아도 되는 자리. 그런 여유가 있어야, 이어지는 일도 오래 지속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맞춤법으로는 놀이터가 바른 표기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놀잇터라고 씁니다. 여기는 ‘잇는’ 자리이니까요.